Jessica 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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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여기서 뭘 얻어가고 싶어?”
김봉준 대표변호사님과 처음 마주하자마자 맞닥뜨린 질문이었습니다. 짧은 기간의 인턴십동안 과연 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무엇을 얻어가고 싶은 걸까. 실제 로펌을 알고싶어서 또는 미국이라는 큰 무대에서 경험을 키우고 싶어서라는 흔하디 흔한 대답 말고, 진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간절한 것은 뭘까.
오랜 침묵 끝에 제 대답은 “제가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를 알고 싶습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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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상적인 대답이었지만 가장 솔직한 대답이기도 했습니다. 변호사 지망생으로서 매일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공부를 해왔지만, 막상 변호사가 된 제 모습을 생각하면 뿌연 안개가 끼인 듯 막연했기 때문입니다. 그 안개를 조금이나마 걷어내고 제 안의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변호사로서의 삶이 마냥 멋있고 화려한 것이 아닐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KIM&BAE는 저에게 특히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1)영어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만 배운 영어가 과연 미국에서 잘 통할 수 있을지, 2)한국과는 체계가 전혀 다른 미국의 소송 사건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고, 더불어 3)날카로운 독설로 스탭들의 혼을 빼놓는다는 대표변호사님의 냉철한 트레이닝도 유명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제가 변호사가 되고 싶다면, 그 이유가 바로 제가 찾던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기대나 설렘보다는 오히려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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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맡은 일은 특허사용 및 근로계약서를 검토하는 일이었습니다. 계약서 상 근로자에게 불리한 급여 조절 또는 계약 종료에 관한 사항이 있는지를 찾는 것이었는데, 그리 길지 않던 계약서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특이사항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면 제게 일을 맡겨준 동료 변호사에게는 누가 될 것이고, 클라이언트에게는 큰 손해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별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부분은 줄을 그어 가져가 검토를 받고 나서야 한숨 놓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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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AE에 있는 동안 가장 주력해서 참여했던 사건은 제가 인턴십을 시작하자마자 의뢰된 횡령 사건이었습니다. 꽤 규모가 큰 사건이었던 만큼 돈의 흐름을 쫓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약 7년간의 방대한 은행 거래내역을 오차 없이 엑셀 파일로 만들어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수표가 흔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수표를 인출하고 예금하는 과정과 수표 및 예입 전표를 읽는 법까지 하나하나 알아봐야 했습니다. 은행 거래내역에 표시된 카드구매, 온라인구매, 수표입금, 계좌이체, 현금인출, Debit과 Credit 등으로 구분하여 정리하다보니 그제서야 미국의 뱅킹 시스템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거래내역을 모두 정리한 후 모종의 지속성을 보이거나 눈에 띄는 지출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가진 자료들이 부족한 경우 최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인터넷으로 조사하여 채워넣어야 했습니다. 뉴욕과 뉴저지 시의 사업 및 소유재산 리서치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고 계약서를 찾아내 수표의 사인과 대조하는 등 꼼꼼한 분석능력이 요구되었습니다. 찾아내기 힘든 쟁점일지라도 끝까지 파고들어가는 꾸준함도 필요했습니다. 더 많은 연결점을 찾아낼수록 클라이언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보람찬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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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원고가 제기한 소에 대해 약식판결을 요청하는 답변서를 살펴보고 관련 법령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지 등을 확인하거나, 한글-영어 문서를 번역하는 일 등을 맡았습니다. 더불어 법정방청을 할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특히 Municipal Court는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스템이었는데, 교통법규 위반이나 단순한 과속티켓 문제까지도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정에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법정과는 또다른 분위기의 법정을 견학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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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여러 가지 일을 하다보니 어느덧 인턴십이 끝나갑니다. 인턴십 기간동안 가장 많이 배운 점은 꼼꼼함과 자신감을 갖춰야한다는 점입니다. 주어진 일에 대해 스스로 꼼꼼하게 임하면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나 자신을 믿고 일을 맡겨준 클라이언트에게 반드시 보여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처음으로 가슴 깊이 느낀 제가 되고 싶은 변호사의 모습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때마다, 또 실제 변호사가 되어 사건을 맡을 때마다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제가 찾아야 할 답은 많습니다만, KIM&BAE에서의 경험은 제 스스로 더 깊이 고민해볼 기회를 제공해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환경 및 미국법 체계를 전혀 알지 못하던 여러모로 부족한 제게 일을 맡겨주신 변호사님들, 이곳에 있는 시간동안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시고 만날때마다 웃으며 인사해주신 스탭분들, 또 함께 와인파티를 하며 좋은 시간 선물해주시고 누구보다 많이 신경써주시던 한국인 스탭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남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