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 Young Lee

Internship Period: June 3, 2013 to July 19, 2013

기회의 여신은 앞머리만 있고 뒷머리는 없다고 합니다. 기회라는 것은 다가올 때 잡아야 하고 그것이 돌아간 후에는 손을 뻗어도 잡기 어려운 법입니다. 문제는 기회가 올 때에는 그것이 기회인지 잘 모르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3학기 시험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던 4월, 저는 깊게 생각하지도 않은 채 즉흥적으로 변호사 시보를 김앤배 사무실에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국내에서 변호사 시보를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갈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회사에 폐만 끼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그만 도망가고 싶어졌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저는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가 만나러 가는 것이 행운의 여신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두 번의 굵직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습니다. 한 번은 실제 소송과 관련된 업무였고 또 다른 것은 회사의 홍보와 관련된 블로그에 올릴 법적 쟁점에 관한 컨텐츠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두 업무는 큰 차이가 있었고 제가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도 다른 류였지만 두 가지 일 모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매사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현재 진행 중인 소송에 직접 뛰어들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루종일 일을 했는데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퇴근을 하면서도 마음이 허탈하고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절대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자료들이 조금씩 발견이 되고 다른 변호사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찾아낸 작은 조각들을 사건의 덩어리에 조금씩 붙여 넣어 모양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니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수습기간이 짧아 사건의 진행을 좀 더 보고 가지 못하는 점이 매우 아쉬웠지만, 아마도 저는 평생 제가 처음으로 만난 사건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블로그에 올릴 컨텐츠를 작성하기 위해 저는 미국 변호사들이 읽는 이라는 책을 받았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읽고 한국어로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질의응답의 형식으로 작성을 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과제였습니다. 연수원에서 1년 간 영미법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사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들은 것보다 훨씬 심도 있는 내용과 실제 사용되는 서식, 법조문은 저를 몹시 당황시켰습니다. 어떤 날은 한 페이지를 해석하는 데에 하루종일 걸리기도 했습니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기도 했지만 한국에 없는 제도들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제가 완벽하게 그것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성한 문건을 바쁜 와중에도 대표변호사님은 일일이 수정해주시고 그 제도의 취지와 운영 실태에 대해서 보충 설명도 해 주셔서 제게 몹시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두 가지 큰 프로젝트 외에도 저는 의뢰인이나 공무원과의 미팅, 검사와의 conference 등 매우 어렵고 중요한 자리에 동석을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사건 자체를 메모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을 대하는 방법, 협상을 하는 방법, 메모를 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서류 정리를 보조하면서 증거서류를 직접 만져볼 기회도 얻었습니다. 사소하게 여겨지는 복사나 스캔조차도 증거물의 동일성이라는 면에서 몹시 중요하기 때문에 소홀히 다루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변호사라는 업무가 얼마나 조심스러운 것인지 깨닫곤 했습니다.

여태껏 저는 혼자 일을 하는 법만을 배웠습니다. 고시공부를 할 때에도, 사법연수원에서 기록을 작성할 때에도 항상 혼자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항상 타인과 함께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조사한 정보로 변호사님은 문서를 작성하셨고, 제가 준비한 초안을 받아 몇몇 부분을 고쳐주시면 다시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글을 써야 했습니다. 제가 제 시간에 일을 마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자신의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마치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며, 제가 새삼 앞으로의 삶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법조인은 타인의 삶을 짊어지고 가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법원에 자주 드나들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 그대로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법원은 그들에게 매우 멀게 느껴지고, 법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에게 법원으로 가는 것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고 가장 큰 고난일지도 모릅니다. 법조인들은 그들의 고뇌를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끝이 난 사건을 검토하게 하는 방법으로 연습을 시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보다 영어를 잘 하는 직원께 그냥 책을 번역할 것을 맡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앤배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제가 사건을 망쳐버릴지도 모르는 위험 부담을 안고 제가 실제 사건을 다루도록 허락해주셨고, 번역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제도 자체를 잘 몰라서 엉터리로 컨텐츠를 작성해도 모두 수정을 해 주시고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일을 돕기는커녕 폐를 많이 끼치고 간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울 따름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김봉준 변호사님과 배문경 변호사님 외 많은 변호사님, 그리고 언제나 부지런하게 모두를 돕던 스텝 분들의 모습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한 제게 일일이 일을 가르치는 것보다 직접 하는 편이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쉽게 설명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때마침 제게 다가온 기회를 안았고, 이는 제 삶의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7주간의 짧은 수습 기간이었지만 이곳에서의 7주는 지난 7년간의 세월보다도 제게 많은 감흥을 주었습니다. 여기서의 감동을 그대로 안고 한국으로 돌아가 마음이 따뜻한, 믿음을 주는 변호사가 되도록 언제나 노력하겠습니다.